‘군함도(軍艦島)’라 불리는 하시마 섬(端島)은 일본 나가사키 인근에 있는 작은 섬이지만,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상처는 결코 작지 않다. 조선인 강제징용의 아픈 기억이 깃든 이 섬은 영화, 소설,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재조명되며 많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오늘은 군함도의 실체, 영화와 소설 속 모습, 그리고 현재 관광지로 변모한 현실을 조명해본다.
군함도란? – 이름 뒤에 숨은 진짜 이름, 하시마 섬(端島)
군함도는 공식 명칭으로는 하시마 섬(端島)이라 불린다. 일본 나가사키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9km 떨어진 바다 위에 떠 있는 이 섬은 한때 일본의 산업화를 이끈 석탄 산업의 중심지였다. ‘군함도’라는 별칭은 섬의 형태가 마치 일본 해군의 전함 ‘도사(土佐)’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하늘에서 내려다본 섬의 모습은 방파제로 둘러싸인 외형 덕분에 군함과 유사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곳이 유명해진 진짜 이유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의 상징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역사 속의 군함도 – 조선인 강제징용의 아픈 흔적
하시마 섬은 1810년대 석탄이 발견되면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됐다. 이후 일본의 미쓰비시(Mitsubishi) 재벌이 이 섬을 매입해 1890년부터 석탄 채굴 사업을 본격화했고, 20세기 초반부터는 일본의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인구가 급증했다. 가장 논란이 되는 시기는 1930년대 후반부터 1945년 패전까지, 일본이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조선인과 중국인들을 강제로 징용해 노동력으로 활용했던 시기다. 당시 수많은 조선인들이 섬에 끌려와 좁고 위험한 갱도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중노동을 견뎌야 했다. 좁은 숙소, 환기가 되지 않는 막장, 낙석 위험과 탄광 사고, 식량 부족, 언어 폭력과 차별까지—이곳은 단순한 탄광이 아니라 ‘지옥의 섬’이라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현실의 감옥이었다. 현재까지 정확한 조선인 징용 인원이나 사망자 수는 일본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군함도는 한일 간의 역사 문제에서도 주요 쟁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군함도와 영화 – 기억을 되새기는 매개체
2017년 한국에서 개봉한 류승완 감독, 황정민·소지섭·송중기 주연의 영화 『군함도』는 이 섬의 어두운 과거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당시 군함도에서 벌어졌던 강제노역과 조선인들의 참혹한 삶을 극적으로 재현하며 국내외 많은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특히 좁고 어두운 갱도 속에서 중노동을 하던 장면, 조선인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가던 장면 등은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할 이유를 강렬하게 환기시킨다. 하지만 일본 내 일부 보수 언론과 시민 단체는 영화의 내용을 ‘과장’ 혹은 ‘허구’라고 주장하며 반발하기도 했다. 영화 『군함도』는 그 자체로 역사 해석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군함도와 소설 – 문학으로 기록된 진실
군함도를 소재로 한 문학 작품도 여럿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찬주 작가의 『군함도』이다. 이 소설은 실제 하시마 섬에 강제로 끌려가 노동을 했던 조선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구성된 장편소설로,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인물들은 허구이지만 상황과 배경, 사건 전개는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읽는 내내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책을 통해 우리는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이름 없는 조선인들,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 그리고 그 고통을 끝까지 간직하고 살아온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지금의 군함도 – 관광지로 바뀐 현장, 그리고 그 불편함
놀랍게도 군함도는 현재 일본의 인기 관광지 중 하나다. 2015년에는 일본 정부가 이 섬을 포함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조선인 강제노역의 역사를 축소하거나 무시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큰 논란이 되었다. 유네스코 측에서도 등재 승인 당시, “전체적인 역사, 특히 강제노역에 대한 진실한 설명을 추가해야 한다”는 조건을 명시했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이를 소극적으로 이행하고 있다. 현재 군함도는 날씨가 좋을 때만 배를 타고 상륙할 수 있으며, 일부 제한된 구역만 관광객에게 공개되고 있다. 실제 채탄 현장이나 조선인 숙소가 있었던 구역은 노후화와 안전 문제로 접근이 불가능하다. 관광 가이드는 섬의 산업 유산과 건축에 집중하며, 조선인 강제노역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 생략된다. 이러한 현실은 군함도가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역사 문제임을 보여준다.
한국인에게 군함도란?
우리에게 군함도는 단순한 한일 역사 갈등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말할 수 없었던 침묵의 역사, 기억되지 못했던 이들의 이름, 그리고 현재에도 여전히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진실의 무대다. 단순한 분노나 반일 감정을 넘어서, 우리는 이 섬을 통해 기록되지 않은 역사에 귀를 기울이고, 남겨진 증언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군함도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할 수 있지만, 그 중심에는 분명 역사적 진실과 인간의 존엄성이 있어야 한다.
군함도는 아름다운 풍경도, 흥미로운 관광지도 아니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있어 이 섬을 찾는다는 건, 진실을 확인하고, 잊지 않기 위한 행동 그 자체다.
오늘날의 여행이 단순한 풍경 감상이 아니라 기억과 책임의 여정이 될 수 있다면, 군함도는 반드시 그 여정 속에 포함되어야 할 이름이다.